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0531 세계사 수특 헷갈
무엇입니다.
2019. 5. 31. 14:08
중국에서 태음력을 사용하였다. | 상 |
솔로몬 왕 때 전성기였다. | 헤브라이 |
고대 인도 문명 중 철기가 사용되었다. | 아리아인, 철기로 인한 우세함을 바탕으로 인도 지역 정복 |
양사오 문화와 룽산 문화를 남겼다. | 중국 신석기, 흑도/채도 |
귀족 중심의 전차전에서 보병과 기병 중심의 대규모 전쟁으로 전환되어 백성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됐다. | 춘추전국 |
소농민 가족이 사회의 기초 단위였다. | 춘추전국 |
페르세폴리스를 건설하였다. | 아르키메데스 페르시아 |
금, 은 등의 세공 기술이 발달하여 일본, 한국 등으로 전파되었다. | 사산 조 페르시아 |
사산조 페르시아는 지방에 총독을 파견하여 중앙 집권 체제를 확립하였다. | O |
클레이스테네스의 부족제 개편 | 신분 위주-> 지역 단위 |
원주민을 예속 농민으로 삼아 농사를 짓게 하고, 반자유민을 상공업에 종사시켰다. | 스파르타 |
스파르타의 멸망 | 그리스 세계의 내분-> 마케도니아에 멸망 |
소피스트는 진리의 상대성과 주관성을 주장하였다. | O |
소크라테스는 보편적, 절대적 진리를 강조하였다. | O |
호메로스의 <일리아스>, <오디세이아> | 그리스 |
스토아 학파/에피쿠로스 학파 | 감정 억제/ 마음의 안정 |
헬레니즘 문화 | 그리스 문화+오리엔트 문화, 개인주의, 세계시민주의, 간다라 양식 설립에 영향 |
로마 제정에 전제 군주제를 도입하였다. | 디오클레티아누스 |
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 | 로마 |
옥타비아누스는 호민관, 집정관의 직함을 가진 적이 있다. | O |
에우클레이데스의 기하학, 아르키메데스 부력, 태양 중심설 | 헬레니즘 |
북위/수의 수도 | 뤄양/장안 |
시박사 설치 도시 | 광저우 |
오경박사/오경정의 | 한, 동중서, 유교의 관학화/당, 공영달의 책, 훈고학 |
석탄 사용 보편화 | 송 |
통속 문화의 유행 | 송 |
송으로부터 세폐를 받음 | 요, 서하 |
아율아보기가 건국 | 요 |
원 시기 대도로 천도한 것은 칭기스 칸이다. | X, 쿠빌라이 칸 |
위구르 문자 | 원 |
견수사, 견당사를 보내 중국의 문화를 수집하였다. | 야마토 정권 |
일본에서 불교 사원과 불상을 제작했다. | 나라이사, 도다이사 대불전 |
왜구의 창궐 | 무로마치 막부, 고려/조선 등 침략 |
칭기스 칸의 대외 원정 | 서하, 금 |
수도를 상경에서 중도로 옮겼다. | 금, 송의 카이펑 함락 이후 |
효문제/ 송 태조 | 화북, 한화 정책/문치주의 |
주전충에 멸망 당하였다. | 당, 안사의 난 거친 뒤 |
남북조를 통일하였다. | 수(문제) |
카스트에 따른 의무 수행을 중시하였다. | 힌두교 |
지구의 자전과 월식 발생의 원리를 인식하였다. | 굽타 |
참파 | 베트남 중남부, 힌두교 수용, 해상 무역으로 성장 |
진납 | 캄보디아 지역 크메르족, 수도를 앙카라로 옮긴 뒤 앙카라 왕조로 이어짐. |
드바라비티 | 태국, 인도 문화를 동남아시아에 전파 |
스리위자야 | 수마트라 섬, 믈라카, 말레이시아, 힌두교와 불교 수용 |
믈라카 왕조 | 이슬람교로 개종, 포루트가에 멸망 |
사일렌드라 | 자와 섬, 인도네시아, 보르부드르 |
파간 | 미얀마, 몽골에 멸망 |
마자파힛 | 이슬람교 개종, 향신료 무역 독점 |
이슬람 세계에서 맘루크로 활동하며 세력을 넓혔다. | 셀주크 튀르크 |
아이바크 | 델리술탄 왕조 개창자 |
중세 유럽 스콜라 철학의 발전에 영향 | 이슬람, 아리스토텔레스 연구 |
악숨 왕조는 크리스트교를 수용하였다. | O |
바투의 유럽 원정로 | 초원길, 킵차드 한국 건설 |
아프리카 세계/ 지도상 위치 | 카르타고(->....), 쿠시, 악숨, 가나, 말리 |
아라베스크 무늬 | 이슬람, 모스크(돔과 첨탑) |
영국 왕이 프랑스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며 난 전쟁 | 100년 전쟁 |
모범 의회 소집 이유 | 과도한 세금에 대한 귀족들의 반란 |
모범 의회의 결과 | 양원제 의회의 확립 |
롬바르드 동맹 | 지중해의 도시 국가들로 결성되어 십자군 전쟁 이후 무역의 중심지가 되는데 이바지함. |
오도아케르 | 게르만족 출신으로 로마로 이동하여 서로마를 멸망시킴. |
오토 1세가 신성 로마 제국의 교황이 된 경위 | 동프랑크에서 마자르 족, 슬라브 족 침입 격퇴 |
중국에서 전례 문제로 분란을 일으키자 금교령을 내렸다. | 청(옹정제) |
부역황책 | 명(홍무제), 호적 대장, 조세 대장 |
주변국들과 조공, 책봉 체제를 통해 우호적인 관계 유지 | 청(견륭제) |
양명학은 성리학에 대한 반발로 명대에 자리 잡았다. | O, 심즉리, 지행합일 |
본초강목, 천공개물, 농정전서 | 명, 실학 |
에도 막부 때 국학이 발달되었다. | O, 존왕양이 운동에 영향 |
동진의 수도 | 건강(난징) |
청(누르하치) |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침략을 받고 있떤 조선에 구원병 보냄, 만주에서 여진족 통합하여 후금 건국 |
청(홍타이치) | 내몽골 정복, 국호를 청으로 변경, 조선 침략 |
청(순치제) | 베이징 입성, 이자성의 농민군 격퇴 |
아크바르 황제는 토착 힌두교 세력 출신 여성과 결혼하였다. | O,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융합 도모 |
형식상으로 명의 책봉을 받았으나 내부적으로는 군주를 황제라 칭했다. | 베트남, 레 왕조, 적극적인 남진 정책 추진 |
란창 왕조 | 라오스, 불교 문화 발달 |
페르시아 전통적인 군주 호칭인 '샤'를 사용하였다. | 사파비 왕조 |
사파비 왕조는 유럽 상인들과 크리스트교 선교사들의 이스파한 체류와 신앙의 자유를 허락해주었다. | O, 발전 |
술탄 아흐베드 모스크 | 오스만, 이슬람 계승, 블루 모스크 |
밀레트 | 오스만의 종교적 공동체, 종교에 관용적 |
페르시아의 영향을 받은 세밀화가 유행하였다. | 오스만 |
맘루크 | 아랍이나 페르시아 왕조에서 튀르크 소년들을 훈련시켜 병사 조직 |
아유타야 왕조는 꼼바웅 왕조에 의해 멸망하였다. | O |
사파비의 수도 | 이스파한 |
성(유유) 소피아 성당 | 크리스트교 성당으로 건설되었으나 동서 교회가 분열되며 그리스 정교회 성당, 십자군이 라틴 제국을 수립하며 로마 가톨릭교회 성당, 오스만의 진출로 이슬람 사원 등으로 활용되었다. 현재는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. |
성 베드로 성당 | 르네상스, 열주와 돔 강조 |
르네상스 시대 인물 | 페트라리카, 보카치오, 마키아벨리, 라파엘로, 레오나르도 다빈치, 보티첼리, 마켈란젤로 |
알프스 이북의 르네상스는 종교 개혁에 영향을 미쳤다. | O, 교회에 비판적 |
가격 혁명의 영향 | 물가 상승, 봉건 귀족 타격, 신흥 시민 계층/ 농민 지위 상승 |
포르투갈은 에스파냐의 지배를 받았었다. | O, 프랑스/영국의 도움으로 독립 |
루이 14세는 '태양 왕'을 자처했다. | O |
포루투갈은 북아메리카에 식민지를 건설하였다. | X, 에스파냐, 남아메리카/아프리카/아시아 |
<군주론> | 때로 교활하고 신의를 저버리더라도 목적을 이룰 수 있는 강력한 군주 희망 |
프리드리히 2세는 계몽사상의 영향을 받았다. | O, 계몽 전제 군주, 신앙의 자유 인정, 국내 산업 육성, 사법 제도 개선 |
네덜란드는 에스파냐로부터 독립했다. | O, 네덜란드 독립 운동 |
인간은 이성을 통해 우주 만물의 원리를 합리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보았다. | 합리론, 데카르트 |
경험론과 합리론을 종합하였다. | 칸트 |
제임스 1세는 청교도를 탄압했다. | O, 왕권신수설 내세움. |
인클로저 운도을 주도했다. | 젠트리, 영국 혁명의 배경 |
상퀄르트 | 상류층이 입는 퀄르트를 입지 않은 민중, 프랑스 혁명 과격화 주도 |
프랑스 국민 의회는 헌법을 재정하였다. | O, 재산에 따른 선거제에 기초한 입헌군주제 |
혁명전쟁 | 오스트리아/ 프로이센vs프랑스, 입법의회~나폴레옹 아미벵 조약 |
공화제 헌법 | 국민 공회 때 자코뱅 파, 공화주의/ 남성 포통 선거제 |
살롱 | 계몽사상 전파의 중심지 |
낭만주의는 개인의 감정을 중시했다. | O, 이성을 중시하는 계몽 사상과 형식에 치우친 고전주의에 대한 반발 |
7월 혁명의 의의 | 벨기에 독립, 유럽 각지 자유주의 운동 전개 |
협동촌(뉴래너크)를 건설하였다. | 초기 사회주의, 오언 |
실증주의는 프랑스 사회학의 토대가 되었다. | O, 19세기, 콩트 |
공리주의는 영국 자본주의 개혁의 사상적 기초가 되었다. | O, 19세기,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|
이집트의 수에즈 운하의 권리권을 차지하고, 이집트를 보호국화했다. | 영국 |
튀니지를 보호령을 삼았다. | 프랑스 |
아프리카의 첫번째 공화국 | 라이베리아 |
프랑스가 베트남 지배권을 중국으로부터 인정받았다. | 청프전쟁 |
태평양의 비스마르크 제도, 마셀 제도를 식민지로 삼았다. | 독일 |
자국 크리스트교 선교사를 박해했다는 구실로 베트남에 군대를 파견하여 보호국으로 삼음. | 프랑스, 청프전쟁 |
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를 자치령으로 삼았다. | 영국 |
트리팔가르 해전에서 프랑스를 격퇴하였다. | 영국 |
무술개혁 | 변법자강운동 중 근대적 개혁 추진 |
메이지 유신이 진행되자 무사들은 봉기를 일으켰다. | O, 특권을 되찾고자 |
메이지 유신의 결과 농민 폭동이 발생했다. | O, 조세 부담 증가 |
타이완의 반청 세력이 진압되는 결과를 가져왔다. | 청(강희제) |
세포이 항쟁의 과정 | 세포이 항쟁-> 영국 동인도 회사 진압-> 무굴 제국 황제 폐위-> 인도 통치 개선법 재정-> 동인도 회사의 인도 지배권 박탈-> 영국령 인도 제국 |
신해혁명의 자극을 받아 중국 광둥에서 베트남 광복회 결성 | 베트남, 판보이쩌우, 베트남 유신회, 동유 운동 |
통킹 의식에 참여하는 등 학교 설립 운동 전개 | 베트남, 판쩌우찐 |
청년 튀르크 당의 활동은 피지배 민족의 반발을 초래했다. | O, 극단적 튀르크 주의 |
아라비 파샤 | '이집트인을 위한 이집트 건설'과 입헌제 확립을 요구하며 혁명 주도, 혁명을 주도했으나 영국의 개입으로 실패 |
알 무크타르 | 리비아, 강력한 저항 운동으로 이탈리아가 효과적으로 지배하지 못함. |
수단 | 무함마드 아흐마드가 이집트와 영국의 지배에 맞서 스스로 '마흐디'라고 부르며 군대 일으키고 개혁 추진, 영국의 지배 |
파나마 운하를 관리했다. | 미국 |
영국과 프랑스 세력 사이의 완충 지대로 독립을 유지하였다. | 태국 |
람 모한 로이 | 인도의 힌두교 지도자들과 사회 개혁을 주도했다. |
필리핀 연맹 | 호세 리살의 주도로 조직 |
카자르 왕조의 쇠퇴 | 이란 |
제1차 전쟁 이후 노동당 내각이 수립되었다. | 영국, 맥도날드 |
켈로그-브리앙 | 자국 국민의 이름으로 국제 분쟁 해결하기 위해 전쟁 일으키지 않음. |
국제 연맹 창설 시 소련은 배제되었다. | O, 독일과 소련은 배제됨 |
스탈린의 통치는 독재 체재를 강화하였다. | O |
피을 일요일 사건의 배경 | 러일 전쟁에서의 불리한 사왕, 전제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분노 |
유고스타비아 연방 해체 과정에서의 내전 | 보스니아 내전, 헤르체코미나 내전 |
카슈미르 지역 무력 충돌 | 인도, 파키스탄 |
쿠바 미사일 위기 | 흐루홀프 |
SALT | 브레즈네프 |
프랑스 드골 정권의 독자노선은 냉전 체재를 완화시켰다. | O, 유고슬라비아 티토의 독자노선과 같은 맥락 |
아라바 파샤 | 이집트의 반영 운동 주도, 영국은 이집트의 독립을 인정하였으나 군사주둔권, 수에즈 운하 관리권은 계속 차지하였다. |
수카르노 | 이슬람 동맹과 함께 독립 운동을 전개한 인도네시아의 국민당 |
프랑코 군부 세력의 반란을 지원하였다. | 이탈리아/ 독일, 에스파냐 내전과 관련 |
오스트리아와 체코 슬로바키아를 병합하였다. | 독일, 라인런트 |
후사인, 백마흔 합의 | 세계 1차 대전 중 영국이 오스만 제국을 압박하고자 아랍인에겍 독립을 약속. 벨투어 선언과 충돌하여 훗날 팔레스타인은 둘렀단 아랍인과 유대인 사이에서 갈등을 초래. |
세계 1차 대전에서 킬 군항 수병들의 반발에 독일군은 공화국을 선포하였다. | O, 바이마르 공화국 |
영국은 인도의 각 주에 대해 외교와 군사를 제외한 자치권을 인정하였다. | O, 신인도 통치법 |
동, 서독 기본 조약 | 양국 관계 정상화, 이산 가족 등 인도주의적 교류 지속 |
유고슬라비아 독자적인 노선은 사회주의 경향을 보였다. | O |
블록 경제 |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식민지 본국과 식민지 간의 자유로운 경쟁을 유도하는 반면 여타 지역과의 교류에서는 차별젖ㄱ인 경제 정책을 폄. |
제2차 세계 대전 추축국 | 독일, 이스라엘, 일본 |
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참전국 전체회의를 개최하였다. | X, 연합국, 패전국 간의 개별 조약만 체결 |
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오스트리아는 영세 중립을 선언하고 주권을 회복하였다. | O |
국제 연합 헌장 채택 | 센프란시스코 회의 |
자유 민주주의 진영에서의 냉전 체제의 성립 과정 | 트루먼 독트린-> 마셜 계획-> 서독 단독 통화 개혁-> NATO |
공산주의 진영에서의 냉전 체제의 성립 과정 | 소련의 동유럽 공산화-> 코민 포름, 코메콘 창설-> 베를린 봉쇄-> 바르샤바 조약 |
아프리카의 해 | 1960년, 신흥 아프리카 의 독립 국가가 많이 생겨 났다. |